시와 산문(창작품)

27 편 배움의 그릇_김휘도

흐름 김휘도(시와 색소폰) 2021. 7. 6. 11:59

27편 배움의 그릇

                                    흐름 김 휘 도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릴적부터 관습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혹은 가족, 친척, 지인으로부터
" 열심히 해서 꼭 성공(成功)해야 한다" 라는 말을 참 많이 듣고
자라왔고 지금까지도 듣고 있습니다.

그 놈의 성공이 무엇인지 많이 고민한 적도 있지요.
꼭 남들보다 출세를 해야 하고
꼭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벌어야만이 성공이 아니겠지요.

생활 속에서도 잠을 자더라도 숨을 쉬고 있는 한
성공과 실패의 두 단어는 평생 자석처럼 따라 다닙니다.
사소한 것에도 성공과 실패를 겨누는 일들도 허다하지요.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성공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도둑질하거나 자살을 기도하더라도 그것을 성공적으로
완수 하려고 하지 실패하려고 노력하고 기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하려면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알아야 하지요. 모르면 호령을 못 하는 장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뭐! 죽는 것은 배울 필요 없다구요?
죽는게 쉬우니까 사람들이 안 죽으려고 바둥거린다구요?
마음만 먹으면 죽는 것은 식은 죽먹기라구요?
누워서 떡먹기라구요?
천만에 말씀이요!!
죽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게 어디 있습니까?
죽는 것도 내 목숨이지만 내 마음대로 안 되는게 사람목숨이지요.
그래서 아마도 죽을 각오하고 그 일을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래도 모든 일을 목숨과 바꿔가며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천하에 사람목숨 보다도 더 중요한게 어디 있겠습니까?

스승이나 선배 혹은 친구에게서 배우건
책에서 배우건 자신 스스로 깨우치건 자연에서 배우건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모래 한 알,
풀 한 포기에서도 배우고
정반대의 현상에서도 우리는 배우고 느낍니다.
배우고 싶어서 배우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또한 무의식 속에서도 저절로 배워지고 알아지는 것들도 허다하지요.

자기보다 나이가 작거나 학식이 적다고 무시하는 경향이 허다합니다.
별로 유명하지 않는 강사라면 그 강의도 안 듣고 무시해버리죠.
유명한 강사나 무명이고 학문에 있어서 조금 떨어진다 해도
강의 방법은 달라도 본질은 같은 말인데 우리는 말은 안 하지만
마음에 문을 닫아버리고 그릇의 뚜껑을 덮어버리고
혹 몰래 들어올까 봐서 문에다 열쇠로 단단히 채우지요.
시골에 가면 장독이 있는데 그 뚜껑 위에다 무거운 돌 하나를
올려놓고 바람도 막고 비도 막는 샘이지요.

누군가가 그 부분을 지적이라도 하면 대뜸 화를 내기도 한답니다.
원래 이런 격의 사람은 바른말을 하면 안 좋은 소리로 들리거든요.
강의를 들으면서도 내 생각과 질이 다르면 이단이라고
배척을 하고 경계를 하지요.
이런 마음에서 아무리 명 강의를 듣는 들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이런 마음에서 아무리 좋은 사람과 대화를 한 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차라리 종지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더 고귀하고 갚진 사람입니다.
종지의 그릇은 조금이라도 담을 수 있지만 덮여 있는 그릇에는
흐르는 물 밑에 놓아 두어도 담기지가 않지요.
단지 겉으로만 치장을 하느라 세월만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무릇 하늘은 높음과 아름다움을 자랑하지 않으며
바다는 그 넓음과 깊이를 내세우지 않으며
광음한 산은 그 많은 자산을 내세우지 않으며
사랑은 그 잘남을 뽐내지 않습니다.
맞는 말이라구요? 당연하지요!
언제 거짓말 하는 것 보았습니까?
천하 없는 지식을 가졌어도 나누어 같이 배우지 않으면
그 지식은 먼지와 같이 소용이 없으며
둘도 없는 사랑을 품었어도 더불어 함께 나누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사랑에 불과한 것입니다.
항상 받아들일 수 있는 열려져 있는 마음을 가지며
한 가지를 알아도 열을 알 수 있는
문일지십(問一智十)에 이르기 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사무라이의 관련된 영화를 볼 때면 주인공이 원수를 갚기 위해
스승을 찾아가서 무술을 연마합니다.
온갖 궂은 일을 다하고 수련하고 뼈를 깎는 아픔을 참으면서
오로지 원수 값는 그런 한결같은 마음으로 힘든 일을 참으며
고된 훈련도 견뎌내며 오랫동안 수련을 하지요.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흘러 기량이 높아지면
스승과 제자와의 진검승부를 하지요.
제자의 실력이 스승을 능가하여 이기면,
제자의 칼에 찔리어 행복하게 죽습니다.
죽기 전 가냘픈 목소리로 할 말 다 하면서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것 같은 분위기지만
"내려가서 뜻을 꼭 이루거라" 고 말 하고 죽지요.

뭐! 살아날 때도 있다구요?
진검으로 안하고 목검으로 한다구요?
그냥 들어보세요!
내가 본 영화는 사부가 거의 다 죽었어요!!
얘기 하자면 사부가 죽어야 얘기가 되고 영화가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자신보다 나은 상대를 만나면 배우려고 하지는 않고
시기하고 배척하지는 않는가요?
헐뜯고 끌어내리려고 하지는 않는가요?
자신의 작은 그릇은 제쳐두고 다른 큰 그릇만을 찾지는 않았나요?

하나뿐인 삶을 컴컴한 마음속 편견 안에 꼭 감추어 두지 말고
불빛으로 비춰보고 만져보고 보여보고 들추어서
무엇이 문제인지 반성을 해봅시다.
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 쉽게 잠들지 못합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침대 위에 누워 몇 십분 이상의 공을 드려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꿈속을 헤메이지요.
여러 날 중 긴긴 밤을 꼬박 지새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그 시간이 너무 허무하고 한숨이 절로 나오더군요.

매일 난 우리 고운님과 대화하고 잠자리에 들 때
고운님을 재워놓고 잠을 잡니다.
고운님은 누워 오분쯤 늦어도 십분 안에 잠들 거든요.
그 시간쯤이면 난 이제 자야지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있을 시간인데
새근새근 잠자는 것을 보니 참 부럽기도 하고 잠자는 그 모습이 행복해 보이더군요.
그래서 이왕 바로 못 잔다면 그 시간에 오늘 지나 온 일들을 정리를 하지요.
잘못된 점은 반성하고 좋은 점은 한번 웃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속 나의 모습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속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요동이 없어야 합니다.
넓은 바다에 출렁이는 큰 파도 위에는 그림자 하나 이게할 수 없 듯
내 마음속이 출렁이거나 산만하면 나는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볼까요?
거울은 거짓이 없고 자기가 행동하는 그대로를
자기가 말을 하고 있는 입 모양 그대로를 보여준답니다.
거울 속에 무엇이 보이는지요?
당신이 품고 있는 생각의 깊이가 보이는가요?
당신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그 해맑은 눈동자가 보이는가요?
명절날 새 신과 새 옷을 입고 뛰어다니는 그 순수한 마음이 보이는가요?
당신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때의 그 당당하던 마음들이 보이는가요?
새 천년 일출을 보며 지난해의 캐캐묵은 낡은 습관을 다 버리고
액자 틀 속에 갖혀 생각하던 그 고정관념을 벗어 던져버리고
새해에는,,,, 새해에는,,,,,이라는 다짐하고 무슨 일이든지
기필코 해 내고야 말겠다는 그런 의욕이 그런 도전들이
저 시뻘겋게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맹세하던 그 다부진 마음이 보이는가요?
저 거울 속에 비치는 괴물이 당신인가요?
그렇게 일그러진 얼굴로,
그렇게 화난 인상으로,
그렇게 독기가 품어져 있는 망찍한 얼굴로
내 친구들을 대하고 내 이웃을 대하고
내 동료를 대하고 고객들을 대했다는 건가요?
직장에서 회의할 때나 대화 할 때
작고 얕은 생각으로 상대방을 얼마나 무시하고
그 사람들을 하찮게 여기고 이용을 하며 상처를 주었을까요?

사람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먼저 그렇게 취급을 받아왔고
자기 자신도 하찮은 분류의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여겨집니다.
배움이 많다고 품격이 있고 배움이 적다고 하찮은 사람인가요?
배움이 있다고 위에 서고 배움이 적다고 만냥 그 사람 밑에만
묶어 둘 것인가요?
정말 그런가요?
뭐요!?
그렇다구요?
현실로 볼 때 그렇지 않냐구요?
그런 대우를 받기 싫어서 공부는 안 해도 학벌이라도 취득한다구요?
이런! ! 쯧쯧!!??…….
우리에 배움의 그릇은 어떤 종류의 것 일까요?
우리에 배움의 의도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우리에 배움의 그릇은 어떤 크기인가요?
한번쯤 가볍게든 깊게든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겠습니다.

 

"흐름 김휘도의 내 빈 마음에 무엇을 담아볼까?" 중에서(출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