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문(창작품)

33편 야속한 세월_흐름 김휘도(창작)

흐름 김휘도(시와 색소폰) 2021. 7. 8. 11:17

엄마와 막내 며느리(내 아내)..엄마 사진이 이것 밖에 없다니...ㅠ.ㅠ

33편 야속한 세월
                                흐름 김 휘 도

세월 속에 묻혀 사는 것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세월과 다정하게 걸어가는 것이 조바심이 납니다.
언제 내 곁을 떠날지 모르는 세월과 시간
그 세월과 시간이 나에게 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마음속 모퉁이에 이별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어야 겠습니다.
세월이 싫어서가 아니라 어금니가 뭉개질 정도로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자꾸만 나를 버리려고 합니다.
누구를 짓밟고 일어 서려고 하면
짓밟힌 자가 짓밟은 자의 발목을 잡고 놓아 주지를 않 듯
난 세월의 발목을 잡으려 하고 있고
세월 속에 같이 흘러가는 시간을 잡으려 하고
아무도 내 곁을 떠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애원하고 있습니다.

세월은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이 멀리 훨훨 달아나 버립니다.
시간도 걷잡을 수 없이 시계 바늘이 바쁘게 휙휙 돌아갑니다.

그대 떠날 때 떠나더라도 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단 한번이라도 뒤 돌아 보지 않고 떠나는 세월이
한번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이
정을 간직한 나로서는 침울해지는 마음이고
도리어 발 걸음을 더욱 재촉하고 있는 그대를 보니 야속하기만 합니다.

야속하다 못해 미워집니다.
미워지다 못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내 마음속 뜨거운 정 하나로 그대 곁에 머물렀건만
그 정들을 다 버리고 정작 떠나는 당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처음 내게 속삭이며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솜사탕 처럼 감미롭고 쟈스민 처럼 시원하고
병아리의 깃털 처럼 포근하게
나를 감싸고 나를 어루만져 주고
나를 바라보며 방긋 미소를 짖고
나를 일으켜 세워 걷게 하고
나에게 말을 건네며 말을 하게하고
나를 일깨우며 깨닫게 하고
나를 성숙되게 만들어 세상을 알게 해 놓고선
이제와서 냉정하게 뿌리치며 혼자 떠나려 합니다.
저 멀리 멀리 훌쩍 떠나가려 합니다.
무심한 세월………. 무심한 당신…….
아무리 인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라지만…...
무심하다 못해 원망스러워 집니다.

세월의 인적사항을 아는 이 누가 없는지요?
시간이 어디로 흘러가 다다를 곳을 아는 이 누가 없는지요?
찾을 수만 있다면 가버리는 세월을 잡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세월이 떠나간 빈 자리가 너무 공허합니다.
시간이 떠나간 빈 자리가 너무 황폐합니다.

많은 세월 같이 지내온 정도 있는데
같이 지내온 행복과 웃음이 있는데
내 마음속 열기가 아직 식지 않았는데
그 세월은 얄밉게도 병만 남겨놓고 갑니다.
그 시간은 무정하게도 늙음만 주고 떠납니다.
너무 무심한 당신……….

이렇게 떠날 거면 무엇 때문에 만난는지…….
차라리 만나지 않아도 될 것을….
세월의 치마폭 속에서 자란 나를 저버리고
무정하게도 날 버리고 날 떼어 놓고
황혼의 문턱에 날 혼자 내버려 두고
바람처럼 떠나는 세월이 사무치게 미워집니다.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분을 이렇게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어 놓고 그 분의 청춘을 그 분의 인생을
눈썹이 휘날릴 정도로 그렇게나 빨리 무기력하게 만들어 놓고
책임감 없이 가버리는 세월이 원통해 집니다.

따듯한 방바닥에 밭을 일구는 자세로 습관이 되어버려
쭈거리고 그렇게 앉아서 무료하시다며 두 손으로 과자를 부셔
한 조각 입안에 넣어 우물우물 녹여 드시는 모습을 볼 때

자주 못 보는 늦둥이 막내 아들이 왔다고 기력도 없으면서
일어나 주름지고 앙상하게 말라버린 두 손으로
내 새끼 왔냐며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어정쩡한 허리에도 불구하고
내 손을 잡고 방으로 이끌고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

당신 손수 밥을 지어 막내 아들에게 따듯한 밥 한끼 차려주지 못해
아쉬워 하면서 훌쩍 지나가는 세월을 원망이라도 하는 것 처럼
혼잣말을 하시면서 눈물을 눈으로 다시 삼키시는 모습을 볼 때

종일 지루한 나날들을 보내면서 사람이 그리워 전화기 앞에서
서성이며 그땐 전화번호를 기억했는데 지금은 번호를 몰라
전화도 못하신다며 수화기만 들었다 놓았다 하시는 모습을 볼 때

자식들 전화번호 모두를 흰 종이 위에 큼지막하게 적어 보여도
이젠 눈이 가물가물 하여 어두워 잘 보지를 못해 전화하는 도중 다이얼이 늦었다며
다시 걸라는 안내원의 익숙하고 친절한 목소리를 들으며 못내 수화기를 조용히 내려 놓을 때

당신이 먹는 약의 종류가 수 십 가지라며 자랑 반 동정 반으로 한 개 두개 세 개
세어가며 이 약은 무슨 약이고 또 이 약은 무슨 약이라며 약사보다
더 잘 아신다며 자랑을 하시며 멋적은 웃음을 보이시는 당신 모습을 볼 때

아침 점심 저녁에 먹는 약이 달라 먹기가 혼란스러워 셨는지
잘 못 챙겨 드시고는 몸이 않 좋으셔서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꾸중을 듣는 당신 모습을 볼 때

당신 오래 사실 거라며 경기도에 있는 딸래집에서 길도 모르는 그 길을 버스를 타고
병원에 다니시는 도중 갑작스레 길 바닥에 쓰러져 응급차에 실려 병원 응급실에
누워계시는 모습을 볼 때

주사 맞는다면 조금 겁을 내시더니 이제는 용감하게 잘 맞으시고
이제 나 주사 잘 맞고 몸 곳곳에 주사바늘 자국이라며 살점하나 없는
비쩍 말라버리고 저승 꽃이 이곳 저곳에 자리잡고 노화가 있는 팔을 걷어 올리시며
시커멓게 그을린 피부에 수십 개의 바늘자국과 수십 개의 바늘로 인한
피멍 든 자국을 당신께서 보여주실 때

그 때의 세월과 시간들이 덧 없음을 느낍니다.
젊음을 빼앗아 가고 용기를 빼앗아 가고 가슴속 깊이 묻어 둔
희망조차도 강탈해 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인으로 만든 그 세월이 애달프기만 합니다.

나 어릴 적 당신,
그 젊음은 어디가고 늙음만 남았던가요?
나 어릴 적 당신,
그 활기찬 기상은 다 어디로 가고 병마와 싸우는 건가요?
왜 병들어 가보고 싶은 곳 마음대로 못 가십니까?

당신 기억하시나요!
한 손에는 시장 바구니 들고
또 한 손엔 차가운 도시락이든 작은 보따리를 들고
머리 위엔 시장에 내다 팔 마늘꾸러미와 고구마 줄기
그리고 각각이 구황작물이 든 큰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십리길을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읍내에서 농사지은 것들을
간간히 팔던 재미에 힘든 줄 모르시더니
지금은 바짝 말라버린 어슬어지는 막대기와 같은 몸
수저하나 들기가 힘겨워 하시는 지금
예전에 그런 힘이 다 어디로 가셨단 말입니까?

이슬이 촉촉히 내려진 이른 새벽부터 들에 나가
꼬박 하루 해가 저물어야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시며
입고있던 옷엔 흙더미가 덕지덕지 붙었고 머리에 쓰고있던 수건은
땀에 젖어서 엉망인 모습으로 집에 들어 오셔서
피곤함을 뒤로하며 저녁준비에 분주하셨던 그 옛날 모습들이
어디로 내동댕이쳤단 말입니까?

지난 세월 휴일도 없이
비오는 날이면 비오는 대로 눈 오는 날이면 눈 오는 날 대로
날이 더울 때나 날이 추울 때나 언제나 그러했듯이 일년 열 두달
일에만 전념하시고 없는 형편에 밥 먹는 것도 아까우시다며
하루 한끼 정도는 물로만 허기를 채우시고 밭일 하시는 당신
노년 중 할머니가 되어 이제는 건강하게 편히 쉬셔야 될 것을
불편하게 계시니 막내아들 마음이 몸서리치게 저려옵니다.

예전에도 가진게 없듯 지금 또한 가진 것 없이
그렇게 늘 자식에게 다 나눠주고 당신은 고작
천조각 하나 걸치고 여자로 태어나 얼굴에 좋은 화장품 한 번
못 써보면서 자식들에겐 좋은 음식 먹으라고
내 새끼는 좋은 옷 입어야 된다며 강요하시더니
왜 당신은 누추하게 병들어 계시는지………….

막내아들 장가갈 때는 동네에 큰 잔치를 하실 거라며
몸이 않좋으신데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많은 메밀과 콩 그리고 새 며느리 들어오면
손수 농사 지으신 여러 곡식을 주실 거라며
뒤뜰에 담아놓으셨는데 정작 결혼식 날 병원에 가 계시는 당신
잔치는 어디가고 잔치하려고 준비해 놓은 곡식이 부폐하여
모두 버리면서 눈에는 뜨거운 눈물 고이고
마음속에는 냉가슴 하나 간직하며 버려야 했던 시간들…….

당신이 내게 하신 말 "우리 막내 결혼식 못가봐서 미안하다"며
가냘픈 목소리로 겨우겨우 내뱉는 모기같은 목소리
막내아들 결혼식에 못 가서 매일매일 결혼 사진만을 보며
예복을 입고 우람하게 우뚝 서 있는 아들 얼굴 만지며
예쁘게 단정한 새 며느리 얼굴 만지며 침울한 표정으로
그렇게 그렇게 혼자 매일 시간을 보내 신다는 말을 들을 때
전 심통(心痛)한 마음과 절규(絶叫)에 몸부림칩니다.

막내아들 내외가 어떻게 사는지 무척이나 궁금하셨는지
내가 짐을 챙겨 나설 때 "나도 같이 니네집에 갈란다" 하시며
몸도 많이 편찮으신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먼 길을
따라 나섰던 당신……….
"집은 작지만 둘이 살기에는 딱 좋네!" 라고 하시며 짐을 푸신다.

 

시골집에 가보고 싶다며 걸음을 재촉해서 다다른 시골 집....
어떤 생각에 잠겨 셨는지 많은 시간 동안 꿈쩍을 하지 않으신다.
얼마나 와보고 싶은 집이 였겠는가……
얼마나 보고픈 고향집이였겠는가….
경기도 병원에 가시기전에 텃밭에다 심어놓은 도라지가
제법 뿌리가 굵어졌다며 막대기로 파내어 물에 대충 씻어서 우둑우둑
씹어 드시는 당신……….
그게 마지막이었든가요!……….
그렇게 보고 싶었던 곳 다 보고나니 원이 없든가요?
그래서 그냥 자식들 남겨두고 훌쩍 떠나셨나요?
막내 아들이 이제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당신에게 손자며 손녀를 안겨드리려고 있는데
그것 마저도 보시지 않으시고 가시니……….
가시는 저승길이 그렇게 급하셨나요?
조금 더 쉬었다가 행복도 좀 알고 가셔도 될 것을….
왜 조급하게 그렇게 눈물만 남겨 놓고 떠나십니까?

당신께서 즐겨 입으시는 옷
당신께서 아까워 만져보고만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새 옷들
그리고 당신 체온을 유지해 주던 이불을 태웁니다.
근데 당신을 보내드리는 날도 지금 옷을 태우는 이 시간에도
천둥 번개를 치며 많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비가 내리는 날에는 뼈 속까지 사무쳐
가슴 한 가운데 둥지를 틀어 영원히 잊혀지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에는 새록새록 당신의 모습이 떠오르겠지요.

세월이 얄밉게도 흘러갑니다.
세월이 야살스럽게도 지나갑니다.
누가 이 세월 끝 자락을 잡을 수 는 없는지요?
누가 흘러가는 세월 다다을 곳 아시는 이 없는지요?
그래도 세월은 듬듬이 흘러가는군요………….
소리를 못 듣는 귀 먼 사람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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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김휘도의 " 내 빈 마음에 무엇을 담아볼까...?" 중에서(출간전)